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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Korean, and live in Japan
일본인 남편과 군산 당일치기 여행 <수요미식회 군산편 참고>
2020. 9. 16.
가나자와 거주, 쥬얼리 제작자. 유튜브 채널에서는 일본 도시락 만들기및 가나자와 풍경 기록중입니다. 🍱
일본인 남편과 군산 당일치기 여행 <수요미식회 군산편 참고>
본 게시글은 2019. 10. 25. 18:46 에 네이버 블로그에서 최초 작성된 원본 글 입니다.
저에게 사진은요 ...
지금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로 간절하고 소중한 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되찾을 수 있다면 되찾고싶은,,
어눌한 기억력을 선명하게 불러일으켜세워줄 종이 한장에 기록된 그날의 그 순간의 찰나들.☺
유년시절,
제대로 짐도 못챙겨 살던 집에서 쫓기듯 나와야했을때가 있었어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안주거리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시절은 IMF시절이라 누구든 다 힘들었을거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감상에 젖어 자꾸 과거 이야기 꺼내며 "난 이렇게 힘든일도 겪었는데 그래서 지금 이렇게 대단하다" 라고
생색 내는걸 몹시 싫어하지만, 살다보면 어느 기로에 섰을때에 ,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어린시절의 기억들은
정말 단단하게 굳어지다못해 그렇게 하나의 나 자신이 되어버려 있음을 몇번이고 느끼게되요.
하루아침에 거주공간이 없어져 거리로 나와야했을때에,
그때 우리가족은 몇십년간 찍어 앨범에 차곡이 보관해두었던 모든 사진들을 전부다 잃어버렸었는데요.
그 이후로 몇장 안남은 사진을 겨우겨우 긇어모아, 오늘날 유일한 추억의 사진들로 보존되어있기때문에
저의 어린시절의 사진도, 가족들의 사진도 정말 거의 남아있지 않은 , 나름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진도 오로지 딱 한장.
행여나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진 뒷면엔 꼭 돌려달라는 메세지와 연락처가 기록되어있을 정도죠.
그시절 제가 잃어버린건 비단 사진뿐만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는 누구보다 사진을 찍어 추억이라는 기록으로 남기기를 좋아하게되었고, 친구들을 만나도
유일하게 카메라를 가지고 나가거나, 핸드폰으로 바로바로 찍어서 프린팅해두는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
또 , 행복했던 유년시절, 아버지가 늘 비디오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시며
가족들을 찍어주셨던 기억에서 비롯된 저의 또하나의 취미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사진찍기와 영상찍기를 좋아하는 바로 저 말이죠.
나의 앞으로의 시절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관해두고 더이상 어린시절의 큰 상처가 되었던 그때처럼
잃어버리는것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동시에 큽니다. 무엇보다 사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어요.
컴퓨터에 사진 데이터야 삭제되면 그만이고, 두손에 가지고있는 사진역시 불에 타버리고 잃어버리면 그만인 것들이라,
목숨바쳐 관리를 해봐짜, 세상일은 내마음대로 되지 않을때도 있다라는걸 배워오고.
하나하나 물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진 말자, 라고 한편으로는 언젠가부터 강하게 여겨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인건 주기적으로 인터넷으로 찍은 사진을 집에서 사진으로 프린트 하고있다는거예요.
성향의 절반은 아날로그 인간이라, 두툼한 앨범통에 사진 끼워 넣기를 좋아합니다.
저장했던 사진들 실수로 삭제되고 그러면, 기계한테 화내는 제 자신이 좀 한심해보여서
그냥 출력해서 사진처럼 보관해둬요 .
제 인생영화중 하나는 바로 타이타닉인데요,
잭과 로즈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둘째치고, 그 영화에 나오는 대사 하나하나가 우리네들 삶속에서 되돌아볼수있는
무수한 공감력을 지늬고 있다고 느끼는 영화이기 때문이예요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 로즈가 손녀를 향해 "네 할아버지에게도 말한적없단다(잭 이라는 존재에대해)"라고 이야기하며
마지막 배에서 선원들 앞에서 했던 말들은 늘 마음속에 멤돌아요.
But now you know there was a man named Jack Dawson...
하지만 이제 당신들을 잭도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라는걸 알게되었어요.
.....and that he saved me,
그리고 그가 날 구해줬다라는것을
in every way that a person can be saved.
사람을 구할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I don't even have a picture of him.
나는 그의 사진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He exist now only in my memory.
그는 지금 내 기억속에만 존재해요
.
.
라고 이야기하며 슬퍼 고개를 떨구던 장면.
자신의 영혼을 구해준 잭을 사람들에게 마음의 보물함을 열어
이야기해주던 장면.
제 인생의 엔딩 역시 이 영화 같기를 , 극장에서 개봉한 타이타닉을 보던 중학생때,
저는 곧바로 느끼고있었어요. (갑자기 감성 폭발 ㅠㅠ)
언제나 저의 아름답고 찬란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은
사진 한장 가지고 있지 못한채로,
제 머릿속의 기억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죠.
기억력이 좋아 88년도때의 기억까지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 저에게
그 경험의 슬픔과 애절함을 왠지 늘 되새기게 해주는 영화의 대사라고 느껴요.
어쨌던 나 자신과의 약속은 오늘날까지 실천을 하고있고,
남편과 어딜 어떻게 나가든, 한손에는 꼭 카메라를 쥐고있습니다.
군산에 가는 방법
저희는 무궁화 열차편으로
수원>군산역 행을 선택했어요.
저희는 일본으로 이주오기 바로 전까지, 함께 동탄에서 거주하며 신혼 생활을 시작 했었습니다.
처음 동탄에 살게될때에도, 서울집과 정말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시골에 나와 사는 기분이었지만은
한국은 정말 빠른 시간안에 현대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라는것을 저만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지요.
남편을 만나며 , 정말 옛~날에는 고속버스를 타야만 겨우 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아산, 천안 등은.
동탄에 살고있는 저희로써는 서울에 계신분들보다는 쉽게 다다를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샤넬 콜라보 행사로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게 되었을때에도, 동탄에 살고있는것이 서울에 사는것보다는
동선상 굉장히 편리한점이 많았죠 (웃음)
사실 남편이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4년반동안의 절반정도는 동탄으로오기 전에 아산쪽에 있기도 했었는데요.
덕분에 공기좋고 각 계절마다의 향내음이 그윽한 동네에서 살면서
지금생각해보면 가나자와에 오기위한 준비 단계가 아니였나, 라는 생각 까지 들기도해요.
그러던 어느날, 매섭게 추웠던 주말 아침,
거실 가득 드리우는 햇살속에서 간접 일광욕을 하며 아침일찍 수요미식회 재방송을 보고있었어요.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군산편의 방송을 남편이 보고, 당일치기로 다녀올까? 라는 제안을 하게되었죠.
남편은 회사를 이미 그만두기로 정한 상태였고, 정해진 날까지 마무리하며 근무하는 때였기때문에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좀더 한국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고해요.
현재까지도 한국여행으로 동해바다는 꼭 가자 라고 이야기하고있는 남편이예요. 😏
저희는 무궁화호를 타고 군산역까지 직행하기 위해서 서동탄역에서 1호선을 타고 수원역까지 가서
수원역에서 무궁화열차 티켓을 끊어서 그대로 군산행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어쩌다보니 맞추게 되었던 핸드폰 케이스 샷 한번 찍어보기도하구요,
열차 안에서 먹는 편의점 밥도 어찌나 맛있던지, 바깥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밥 한입 풍경 한입 ,
냠냠
무궁화호를 정말 몇십년만에 타보는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어린시절의 기억이라, 아기때 기억이라 말이죠.
88년도에 제가 3살이었을때 거실 테이블 아래에서 TV로보이는 굴렁쇠 소년을 보고 손뼉치며 좋아라하던 모습은 기억하지만,
아주 어렴풋 무궁화호 안에 있는 것 자체를 거부하던 아기때의 제 감정이 올라오는 듯 했어요 (웃음)
이렇게 핸드폰 충전하는 곳도 있구요. 덕분에 간당간당했던 핸드폰 충전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 무궁화호는 인생에서 거의 2번째로 타볼 정도로 마주할 기회를 만들질 않았던, 성인이 되어서도 열차한번 제대로 못타본
빡빡한 삶을 살아 온건 아닌가, 싶었구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편리한 시설로 바뀐거 아니겠나, 생각해봅니다.
이 사진 한장으로, 군산역에 내렸을때의 이미지가 확- 떠올랐어요.
화물 수송의 거점 답게 , 수많은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을,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확인 할 수 있었거든요.
저희는 가장먼저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수요미식회 방송에서 나왔었던 동네와 가까운 곳을 찾았어요.
바로 진포해양테마공원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한국사람이지만 군산에 대한 역사는 알고있어도 실제로 찾아가본적이없었거든요.
즐겨 찾는 프로그램에 음식 소개 등으로 나온 방송을 본 계기로나마 이렇게 군산 땅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게 감격스러웠습니다.
정말 추운날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아쉬운점이, 현재에도 검색이되는 군산의 알짜배기 정보 등을 좀더 세심하게 찾아보고 가지 못한점이
무척이나 매우 아쉬운 점이라는 것입니다.
급하게 TV로 흘러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갑작스럽게 옷입고 좀 찍어바르고 가방 챙겨 나온 케이스라
최대한 핸드폰으로 검색하면서 봐야할 곳 등등을 체크해가며 이동하긴 했지만은 넘나 역부족인거 🤣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내년에라도 다시한번 춥지않은 계절에 제대로 군산을 다시한번 방문해보고싶은 마음이예요.
수요미식회의 힘 때문인지, 최근에 사람들의 방문이 확- 늘어났다는 택시 운전사 아저씨의 말씀.
자신도 깜짝 놀랐다면서, 오히려 저희에게 가보면 좋을법한곳, 그리고 저기서부터 움직여서 저기까지 가는게 좋다. 라며
감사하게도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셨었어요.
진포 해양공원
진포대첩
1380년(우왕6년) 월, 5백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진포에 침입한 왜구 등을
고려의 수군이 격퇴한 역사적인 사건
1만명 이상의 정예 병력으로 추정되는 그들은,
큰 밧줄로 배들을 서로 연결하여 묶어놓고,
군사를 나누어 이를 지키게 한 다음
대부대를 거느리고 연안에 상륙하여 주변의 고을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함
이들 왜구의 야만적인 약탈로 인하여 우리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덮었으며,
약탈한 곡식을 배로 실어 나르면서 흘린 쌀이
한자 두께가 넘게 땅에 수북이 흐렀을 만큼 그 피해가 매우 컸다고[고려사]는
당시의 치열했던 상황을 전함
이들 왜구를 진압하기 위하여 나선 고려의 지휘 사령보는
해도원수 "니세"와 심덕부 그리고 "최무선" 이었음
이들은 전함 1백척을 거느리고 진포에서 왜구를 공략,
이때 최무선은 자신이 만든 화포를 사용,
함포사격을 통해 왜구의 배들을 불태워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
"진포해전"은 세계 해전사에 처음으로 화포를 사용한 전투였으며, 화력 기동 전술과
해상 포격전의 시초를 열어놓은 역사적인 해전이었으며,
이곳 군산의 현장에서 있었던 해전에서의 빛나는 승리로
그토록 오랫동안 고려를 괴롭혀 왔던 해적 집단 왜구의 기세는 마침내 꺾이게 됨.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함포를 만들어 왜선을 500여척이나 물리쳤던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2008년에 개관한 해양공원.
갯벌쪽으로 쭉- 이동을 하니 엄청 큰 배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위봉함676호.
그리고 그 앞에는 용산에 있는 전쟁 기념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과 비슷한 분위기로
지금은 쓰이지 않는 군대 장비 13종16대가 전시 되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위봉함
위봉함 이라는 함정은 1945년 1월 16일 미국에서 LST849함으로 건조되어 제 2차 세계대전때
연합군의 상륙작전 등에 참전한 군함입니다.
1959년 1월 13일 미국으로부터 인수되어 LST676위봉함으로써 명명된 후
대한민국의 주력 상륙함으로써 상륙작전과 수송작전을 수행 하였습니다.
1965년부터는 월남전의 백구부대 일원으로 전투에 참여하였고
지난 48년간 전투 활동과 해군 사관생도와 해군 장병들의 훈련 및 실습 활동 지원을 통하여
국토 방위 등 대한민국 해군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2006년 12월 31일 명예롭게 퇴역한 함정.
월남전 등에 투입되기도했었던 위봉함 676은 입장료를 내고 내부에 들어가 여러가지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데
저희는 입장은 하지 않고, 밖에 전시된 해군함정, 장갑차, 자주포, 전투기 등
나라를 지키기위해 최일선에서 활동하다가 퇴역한 육군, 해군, 공군 장비들을 관람하였어요.
너무나 눈에 띄었던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서태지와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 라는 뮤직비디오를
찍기라도 한것 같은 분위기의 , 큰 태극기가 절반정도 새겨진 폐허가 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어요.
큰 두채의 건물이 나란히 존재했는데, 이곳 주소는 군산시 해망로 196번지. 상호명 자체가 바로 이 지번인 196 이었습니다.
이 태극기가 절반정도 새겨진 건물은 2개의 건물중 좌측에 있는 건물이었고, 일제 강점기 창고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해요.
군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창고 건물이자, 우리나라에는 군산과 부산, 인천에만 남아 형태를 보존 하고 있다고.
그리고 오른쪽에 보였던 현대식 건물엔 갤러리와 카페가 자리하고있습니다. 그 앞엔
핫 스팟인 매우 큰 우체통이 있지요.
[장미동 구 일본인 창고] -위 사진 참고
1930년대 중본삼길랑 소유의 "중본상점" 건물로 시멘트, 적벽돌 콘크리트로 지은 2층 창고건물.
주로 페인트, 선구, 철물 등을 판매하였고, 해방 후 정부 소유의 적산 건물로 관리됨.
1956년 이용구씨가 현 위치에 호남제분 공장(동아원 그룹의 모태기업)을 설립하고
밀가루를 생산.
이때 호남제분관사로 매입한 건물이 바로 일명 신흥동 일본식 가옥
(등록문화재13호, 히로쓰 가옥)임.
1972년, 상호를 한국제분으로 변경. 목포시로 이전함.
이후 한국제분, 제일산업, 제일사료, 동아제분, 동아에스에프, 동아원 등으로
상호가 바뀌면서 군산시 산업발전에 기여함.
최근에는 식품 대리점 창고로 사용하던 이곳을 2015년 (유) 은파기업
(대표:김성수)이 인수 현재에 이름.
두개의 건물 사이에있었던 엄청 큰 우편함에서는 왠지모르게 사진 한번 찍고싶었지만,
꺄르르 웃으며 즐겁게 사진찍고있는 분들을 뒤로하고, 저희는 그 옆에있는
돌 하루방에서 사진을 찍어봅니다.
정말 너무나 추웠던 날.
군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옛 군산세관 본관
대한제국1908년에 만들어졌고 당시 이야기에 따르면 불란서 사람, 혹은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 했다는 설이 있어요. (건물 앞쪽 벽면에 보이는 붉은 벽돌위치)
군산 세관은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 건물만 이렇게 남아서
많은 관광객분들을 마주하고 있었어요.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써,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있습니다.
1905년 깅ㄹ어가던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시작된 제 1차 군산항 축항공사기간( 1905~1910)중인
1908년(순종2년) 6월에 만들어졌습니다. 서양식 단층 건물로 건평은 약 69평이었다고해요.
붉은 벽돌과 건축 자재를 수입하여 건축되었고, 건물의 지붕은 고딕양식, 창문은 로마네스크양식,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 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 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군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초원 사진관,
바로 제가 중학생때 엄청난 붐이 일어났던 영화인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장소이기도 하구요.
사진관이 보일랑 말랑한 모퉁이를 돌기 직전부터, 쫙~ 늘어져있는 사람들을 볼수가 있었는데요,
기념 사진 찍으러 오신 분들끼리 협력하셔서 한줄로 차례대로 줄을 서서 사진 찍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았어요.
저희 남편은 이 영화에대해서 알리가 없지여. DVD라도 사서 보여줘야 이해가 빠를 것 같았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 제작진들 비하인드 스토리가, 세트장 만들어서 촬영하는것은 배제하기로 하고,
전국의 사진관을 찾아다니면서 괜찮은 촬영장소를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는데,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던 와중에 잠시 쉬러들어간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여름날의 나무그림자가 꽤 괜찮게 드리워진 차고를 발견 했다고해요.
주인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서 사진관으로 개조하게 된게 초원 사진관이 만들어지게된 계기입니다.
"초원사진관"이라는 이름은, 주여배우인 한석규씨가 어린시절 살던동네의 사진관 이름을 따온 것이라는 일담은 유명하지여.
😊
영화 촬영뒤, 주인과의 약속대로 철거했다가, 이후 군산시에서 관광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복원했다고해요.
추원사진관 안에는 영화속 사진기, 선풍기, 앨범, 소파 등등 사용되었던 소품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구요
극중에서 가족 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는 일부는 엑스트라가 아닌 실제 방문객이었다고합니다.
더 재밌는 에피소드는 , 크리스마스 장면에 눈대신에 사용했던 소금을, 촬영후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중에 김장때 쓰기로하고 가져가셔서 제작진들이 청소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고합니다 ㅎㅎㅎ
한국사람으로써는 이 영화가 개봉했던 시절의 년도, 계절 등등으로
아.. 그때 나는. 이라며 동시대를 살아온 기억의 흔적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어 공감대가 형성되는데요.
남편과는 살짝 그런것이 없어서 괜히 제가 미안해졌어요.
이렇게까지 직접 와서 보기까지 했으니 정말로 OST라도 틀어주고 영화를 꼭 보여주고싶은 마음이
커요. 🤎
요런곳 또 지나칠리가 없는 80년대생 마루짱이지요.
초원 사진관을 향하던 중, 건너편에 눈에 확- 들어온 옛날 과자 가게. 인사동에있는 곳 빼고는 딱히 발견하기 어려워서
한번 들어가면 잔뜩 사가지고 나오는 것은 어쩔수없는 추억팔이 소녀인가봅니다.
초등학생때, 그리고 고딩때까지 참 많이도 먹었었던 맥주캔디와 손바닥 캔디.
맥주는 먹어본적도없는 나이에 , 이게 맥주맛인가봉가봉가 하면서 쪽쪽 맛있게도 먹던 맥주캔디는
흰 거품 부분에 혓바닥을 대고 있으면 자글자글 지글지글 끓는 듯한 느낌이 드는것은 다 아실거예요. ㅋ
빨간색과 핑크색이 반반 섞인 체리맛의 손바닥 사탕을 종종 혓바닥을 때리면서 친구와 수다떨던
그리운 그시절.... 😉 (여기 저와함께 손바닥 사탕으로 혓바닥 치시던 조상님들 계신가요???ㅋㅋ)
다 먹고도 빨대 부분은 계속 입에 질겅질겅 물고 있기도 했었죠.
일본어를 하는 남편을 보더니, 일본인이냐며 이 동네에 유명한 일본 여성분이 살고있는데,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라며 반가움을 표해주셨어요.
와, 어느 지역엘 가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각자의 국민들이 다양한 지역에서 살고있는거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아침도 대충 열차 안에서 김밥으로 간단히 떼우며 온 터,
계속해서 걸어다니고 해서 커피한잔이라도, 아니 밥이라도 먹어야겠다고 했는데 왠지 삼천포로 빠져 걸어온
싸- 한 느낌.
그 싸- 한 느낌 그대로 싣고 우연히 향하게 된곳이 바로 군산시 횟집 단지였습니다.
군산시 횟집단지가 사실 저희가 관광하던 곳에서 좀 떨어진 곳이예요.
저희는 걷는걸 좋아해서 아무 정보도없이 노량진 수산시장 같은 모습을 떠올리고 걸어갔는데,
사실 문도 다 닫혀있고, 존재하는 가게도 많이 보이지도않았고, 날이 날이여서 그런지
너무 춥고 배고프고. 그렇게 겨우 간추려서 기대에 부풀어 모처럼 값나가는 세트를 주문했더니.
그날 광어회 먹고 처음 설사 했죠.
큰 쇼크였습니다
죄송하지만, 이곳에서의 기억은 정말 최악이고 엉망이예요.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1년도 안된 사이에 크게 변했을것 같진 않군요.
가게 벽면에 연예인"XXX가 선정한 맛집" 이라고 적혀있긴 했지만 왠만한건 요즘 시대에 어그로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직접 제 입에 넣어보지 않는한은 섣불리 판단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포스팅을 기록하면서
갑자기 지난 기억이 떠올라 갑자기 심~ 한 빡침이......?
주문한 금액에 비해서 사이드가 너무나 많기도했지만 맛있진 않았고,
한점 두점 먹으면서 서비스도 엉망이고 이돈내고 이렇게까지 눈치보며 먹어야하나 싶은 집은 사실 처음이었거든요.
생선에서는 철 수세미가 나오기도하고 ;; 좋게좋게 하려고 다음부턴 좀 조심해 달라고 이야기를 했지만은
오히려 큰소리 땅땅치시며 그냥 다시 가져다 주겠으니 먹으라며 , 인터넷에 쓰는글이라고 저한테 이익이되게 쓰는 글이 아니라,
함께 있던 남편도 정말 보살로 유명한 인물이지만은 그날은 이해가 안가는지 얼굴이 빨개져 말이없더라구요.
아니요, 배부르니 안가져다주셔도되요, 하니 나중에 밉보이기 싫으신건지 억어지로 테이블에 내두시는데.
저희가 그 철 수세미를 먹고 막말로 병원에라도 실려가야 죄송하다는 말씀들을 하시려나 싶었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건, 이렇게 샛노란 색의 광어살은 처음 먹어봅니다.
아마 서울이었다면 테이블 뒤집어 엎었을텐데, 모처럼 군산까지와서 내가 선택한 집인데.. 걍 먹어야지 ... 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먹고있었는데, 날라온 두번째 킥.
서빙할때부터 살얼음으로 반짝이던 회 조각. 🤣😅
그리고 남편과 빵 터졌던것은 참치살이었나?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회조각을 씹는데
아직 딱딱하게 굳어있는 아이스크림을 씹는 것처럼
표면에 살얼음이 남아 희고 빤짝이던 냉동 살 조각이 테이블에 그대로 나왔다는 거예요.
네, 그냥 다 제 잘못이에요.
그 가게에 들어간 제 잘못이고, 그날 제가 운이 없었던것입니다.
남편에게는 그 가게 이미지 하나로 군산 회의 이미지가 확- 다운되어버렸어요.
그냥 수요미식회에서 소개한 집이나 갈껄.
죄송하지만 군산에서는 회 안먹을 것 같아요. 아님 더 맛있는 집을 찾아서 그곳에서
기억 교환 하겠습니다.
오전 6~7시정도에 여행을 계획하고, 곧바로 티켓을 핸드폰으로 구매해두고서
수원역에서 티켓을 출력하고 그대로 열차로 올라 둘만의 당일치기 여행에 성공했던 지난 1월 말.
당일 치기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보로, 집을 나선 하루 일정이었지만,
그리고, 수요미식회를 보고 출발을 서둘렀다고 하기에는, 수요미식회에서 추천해준 군산 맛집 등의 정보 자체도
참고하지않고 무작정 열차에 올랐지만
그렇게라도 군산으로 이동하고,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고 , 보고, 느끼고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그날 오전에 집에서 가습기를 틀어두고 커피만 마시는 일요일의 주말을 시작했더라면
전혀 마주볼수없었을 하루 일과였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아요 .
다녀와서 인터넷에 군산에 대해서 더 검색을 해보니,다녀온곳보다 못가본곳이 훨씬 넘나 많은것,
충분한 정보없이 너무 빨리 다녀온 것 같아서, 후회되고 군산에게 미안해요.
다음에 방문할때에는 좀더 자세하게 공부한 정보를 토대로 남편에게 더더욱 특별한 기억을 선물해주고싶어요.
함께여서 즐거운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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